설렘보다 먼저 넘어야 했던 엄마의 불호령|남은결 25

교실 안은 왁자지껄했습니다. 옆에서는 친구들이 수다를 떨며 한참 웃고 있었고, 나도 그 틈에 섞여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뒷문 쪽에 선배 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언니는 나를 발견하더니 가까이 다가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뜻밖의 말을 꺼냈습니다.

“모레 그 애 집에서 몇 명이 모여 놀기로 했어. 너도 같이 갈래?”

순간 조금 전까지 시끄럽던 교실 소리가 멀어진 것 같았습니다. 괜히 한 골목을 더 돌며 한번 마주치기를 기다렸던 그 애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연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레라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네, 갈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마음은 벌써 모레에 가 있었습니다. 친구들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괜히 책상만 정리했습니다.

처음 설렘을 알았던 열다섯에게 이틀은 참 길었습니다. 소풍을 기다리던 아이처럼 한 번 자고, 또 한 번만 자면 된다고 날짜를 세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넘어야 할 문턱이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걱정이 생겼습니다. 친구들과 놀다가 하루 자고 오려면 엄마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집은 과수원을 했고, 내 기억으로 그 무렵 엄마는 땅콩농사도 함께 짓고 있었습니다.

그날 엄마는 땅콩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밭까지 찾아가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엄마, 나 하루만 친구 집에서 자고 오면 안 돼?”

엄마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잠시 뒤 큰 목소리가 날아왔습니다.

“기집애가 어디 밖에서 잠을 자고 온다는 거야!”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 시절 우리 집에서 딸의 외박은 쉽게 허락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여학생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면서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시선도 강했습니다.

1970년대 여학생, 왜 부모 허락이 더 중요했을까요?
당시 분위기 한눈에 보기
생활규범 청소년의 외출과 생활태도에 지금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던 시기였습니다.
여학생에 대한 시선 여학생은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대 변화 젊은 세대의 자율 욕구와 기성세대의 규범이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엄마의 불호령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친구 집이라고, 여러 명이 함께 있는 거라고 몇 번이나 설명했습니다. 한 번 혼나고 입을 다물었다가도 조금 지나 다시 엄마 곁을 맴돌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말까지 할 수는 없었습니다.

엄마는 한참을 나무라셨습니다. 그러다가 계속 조르는 딸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끝내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밭을 돌아 나오는데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모릅니다. 이제 정말 두 밤만 자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습니다. 골목을 서성이며 바라보기만 했던 내가, 처음으로 그 애가 있는 집의 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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