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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주였던 이유|남은결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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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꼭 한 번 찾아보고 싶은 선배언니가 있습니다. 미팅을 주선하고 평소에도 나를 챙겨주던 언니였습니다. 엄마가 학교에 다녀가신 날, 학생과에서 함께 혼나면서도 내 곁에 있어주었습니다. 다시 만난다면 그때 미처 하지 못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를 지켜준 또 한 사람 엄마가 학교에 다녀가신 뒤에도 나는 평소처럼 학교에 갔습니다. 태연한 척 수업을 들었지만, 마음에는 그날의 민망함과 고마움이 남았습니다. 학교에는 내 편이 되어준 선배언니가 있었고, 집에는 말없이 나를 품어준 작은언니가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작은언니를 따라 땅콩밭과 과수원으로 나갔습니다. 엄마의 일손을 돕느라 언니는 늘 바빴습니다. 나도 함께 일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일은 언니가 거의 다 했습니다. 언니가 땅콩을 캐고 흙을 터는 동안 나는 손끝만 거들다가 밭두렁에 앉았습니다. 작은언니는 그런 나를 타박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의 나는 언니가 얼마나 고단했는지 잘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밭으로 향하는 일이 언니에게는 하루의 연장이었지만, 내게는 언니 뒤를 따라다니며 흙냄새와 바람을 맡는 시간이었습니다. 언니가 잠시 허리를 펴면 나도 덩달아 일어난 척했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 어느새 곁에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나온 시간을 처음 꺼내기 시작한 이야기는 아래 글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 내 쪽을 바라봅니다|남은결 21 그 시절 농사철 정보 한눈에 보기 농사 정보 대략적인 시기 기억할 점 8~9월 과일 수확 늦여름~초가을 포도·배·사과 등은 품종과 지역에 따라 수확 시기가 달라집니다. ...

단팥빵 하나에 남은 그날의 추억|남은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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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기~ 사치기~ 사차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며칠 뒤, 그날 만남을 주선했던 선배 언니 가 다시 나를 찾아왔습니다. “이번 일요일에 이리역 근처에서 4대4로 만나기로 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마음이 들떴습니다. 토요일은 땅콩밭과 과수원에서 보냈습니다 토요일에는 엄마와 땅콩밭을 매고 과수원 일을 도왔습니다. 일을 마치자 엄마는 고생했다며 용돈을 조금 주셨습니다. 다음 날 쓸 돈이 생겨 마음까지 가벼워졌습니다. 일요일이 되자 무엇을 입을지가 문제였습니다. 결국 언니 옷을 몰래 꺼내 입었습니다. 거울 앞에 서니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날의 단팥빵은 달지 않았습니다 선배 언니와 친구들을 만나 이리역 근처 빵집으로 갔습니다. 남학생 넷, 여학생 넷이 마주 앉아 빵과 음료를 앞에 두고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문 쪽을 보던 누군가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선생님이 서 있었습니다. “내일 부모님 모시고 학교로 와. 너희들 전부 부모님 모시고 와.” 웃음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단팥빵은 더 이상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내가 다니던 학교의 분위기 학교생활 그때의 기억 교외 생활 학교 밖에서의 행동까지 생활지도를 받곤 했습니다. 남녀 만남 학생들의 남녀 만남을 꽤 엄격하게 바라보던 때였습니다. 부모님 호출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을 학교로 모셔오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엄마에게는 끝내 ...

사치기~ 사치기~ 사차뽀, 여왕이 된 밤|남은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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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날이 되자 엄마는 과일과 몇 가지 먹을거리를 챙겨주셨습니다. 엄마의 불호령까지 넘어 허락을 받아낸 딸을 막상 빈손으로 보내지는 못하셨던 모양입니다. 나는 엄마가 챙겨준 것을 들고 동네 선배 언니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모두 일곱에서 아홉 명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이라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은 이미 그 집에 먼저 가 있었습니다. 기다린 이틀 끝에 문이 열렸습니다 그 집에 들어서자 금세 웃음소리가 가득해졌습니다. 누군가는 과일을 꺼내고 누군가는 먹을거리를 나눴습니다. 골목을 돌아가며 바라보기만 했던 그 애도 그 무리 속에 있었습니다. 둘만 마주 앉은 것도 아닌데 자꾸 그쪽이 의식됐습니다. 친구들과 선배 언니들이 옆에서 떠들고 웃는 동안 나도 같이 웃었지만, 그 애가 한마디를 하면 괜히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사치기~ 사치기~ 사차뽀, 방 안이 뒤집어졌습니다 한참 수다를 떨다 누군가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사치기~ 사치기~ 사차뽀!” 소리가 이어지자 방 안은 금세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누가 걸릴지 몰라 서로 소리를 지르고 장난을 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나도 배가 아플 만큼 웃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한바탕 뒤집어진 뒤에는 여왕을 뽑는 놀이가 이어졌습니다. 청소년기 또래 놀이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 경험 함께 배우는 것 규칙 있는 놀이 차례와 약속을 지키며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익힙니다. 웃음과 장난 또래 사이에서 긴장을 풀고 친밀감을 쌓는 계기가 됩니다. 여럿의 반응 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설렘보다 먼저 넘어야 했던 엄마의 불호령|남은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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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안은 왁자지껄했습니다. 옆에서는 친구들이 수다를 떨며 한참 웃고 있었고, 나도 그 틈에 섞여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뒷문 쪽에 선배 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언니는 나를 발견하더니 가까이 다가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뜻밖의 말을 꺼냈습니다. “모레 그 애 집에서 몇 명이 모여 놀기로 했어. 너도 같이 갈래?” 순간 조금 전까지 시끄럽던 교실 소리가 멀어진 것 같았습니다. 괜히 한 골목을 더 돌며 한번 마주치기를 기다렸던 그 애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연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레라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네, 갈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마음은 벌써 모레에 가 있었습니다. 친구들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괜히 책상만 정리했습니다. 처음 설렘을 알았던 열다섯 에게 이틀은 참 길었습니다. 소풍을 기다리던 아이처럼 한 번 자고, 또 한 번만 자면 된다고 날짜를 세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넘어야 할 문턱이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걱정이 생겼습니다. 친구들과 놀다가 하루 자고 오려면 엄마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집은 과수원을 했고, 내 기억으로 그 무렵 엄마는 땅콩농사도 함께 짓고 있었습니다. 그날 엄마는 땅콩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밭까지 찾아가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엄마, 나 하루만 친구 집에서 자고 오면 안 돼?” 엄마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잠시 뒤 큰 목소리가 날아왔습니다. “기집애가 어디 밖에서 잠을 자고 온다는 거야!”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 시절 우리 집에서 딸의 외박은 쉽게 허락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여학생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면서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시선도 강했습니다. 1970년대 여학생, 왜 부모 허락이 더 중요했...

돌고 돌아도 설레었던 동네 한 바퀴|남은결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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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생기고 나니 집으로 가는 길도 달라졌습니다. 남은결 23 에서 처음 설렘을 알게 된 뒤부터, 나는 가장 빠른 길보다 그 사람이 지나갈지도 모르는 길을 자꾸 바라보았습니다.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쩌다 한 번 마주칠 수 있다는 생각에 천천히 걷고 한 골목을 더 돌아가곤 했습니다. 멀리 돌아가는 길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슬쩍 발걸음을 늦췄습니다. 그 사람이 다니던 길과 가까워질수록 괜히 주변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하나가 평범한 하굣길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만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다음 골목에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기대가 남았습니다. 기다린 것은 어쩌면 그 사람보다 설렘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길까지 기억하게 했습니다 전에는 스쳐 지나던 골목과 버스정류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마음 과 달리 이런 순간만큼은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했습니다. 친구들은 금세 눈치를 챘습니다. “오늘도 그쪽으로 갈 거야?” 한마디만 들어도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같은 길을 택했습니다. 그 무렵에는 좋아하는 마음과 함께 성에 대한 궁금증도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다를 수 있고 서로의 경계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함께 배워야 했습니다. 첫 설렘이 시작되는 사춘기, 함께 알아둘 성(性) 이야기 변화와 고민 알아둘 점 누군가에게 끌림 사춘기에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호감과 관심이 커질 수 있습니다. 성에 대한 궁금증 몸의 변화와 함께 성과 친밀한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

잠 못 이루게 한 열다섯의 첫 설렘|남은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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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학생이 먼저 마음을 고백하는 모습도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내가 열다섯이던 시절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친한 친구에게 이름 하나를 털어놓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눈이 한번 마주친 날이면 하루 종일 설렜고, 밤이면 그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학교 밖에서 마주치던 그 사람 학교 밖에서 가끔 마주치던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멀리 보이기만 해도 자꾸 그쪽으로 눈이 갔습니다. 우연히 마주치면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쳤지만 몇 걸음 뒤 나도 모르게 돌아보았습니다. 혹시 눈이 마주친 것은 아닐까,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한동안 가슴이 설렜습니다. 친구들끼리만 나누던 이야기 열다섯은 마음만 달라지던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거울 앞에 서는 시간이 길어졌고 교복 입은 내 모습도 달라 보였습니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어른들에게 묻기 어려운 이야기를 소곤거렸습니다. “너도 그래?” 하며 함께 웃기도 했습니다. 몸은 어른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직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좋아하는 마음과 호기심이 어떻게 다른지도 몰랐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모두 자라는 과정에서 만나는 변화였고, 그 속에서 첫 설렘도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열다섯에는 무엇이 달라질까요? 변화 영역 사춘기의 변화 신체 변화 키와 체형이 달라지고 이차 성징이 나타납니다. 감정 변화 감정의 폭이 커지고 마음이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회성 또래 관계가 중요해지고 ...

그때는 왜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요|남은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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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습니다. 몇 시에 들어오든 잔소리 없이, 가고 싶은 곳에 마음껏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남은결 21 에서 여고시절의 문을 열고 보니, 그때의 나는 하루라도 빨리 교복을 벗고 싶어 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자유로울 줄 알았습니다 아침마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복도에 몰려나가 친구들과 떠들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도시락 뚜껑을 열기도 전에 친구 반찬부터 넘겨다보았습니다. 그런 하루가 오래 기억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른들은 늘 학생 때가 제일 좋다고 말했습니다. 학교에 갇혀 공부하고 시험 날짜에 맞춰 움직이는데 뭐가 좋다는 걸까 싶었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어른의 시간이 훨씬 멋져 보였습니다. 친구와 거울 앞에서 머리 모양을 바꿔보고 어른들 말투를 흉내 내며 웃기도 했습니다. 조금 늦게 집에 들어가는 날이면 괜히 마음이 들떴습니다. 그래도 골목 끝에서 우리 집 불빛이 보이면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김제역을 지나던 하굣길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김제역 근처를 지나면 역 안쪽으로 사람들이 오가고 벽의 열차시간표가 눈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오래된 풍경이 떠오릅니다. 승차권을 든 사람들이 개찰구 앞에 서면 역무원이 한 사람씩 표를 확인했습니다. 기차를 타는 사람들은 모두 어른처럼 보였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혼자 표를 끊고 저 기차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 무렵에는 스무 살만 되면 다른 사람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교복 대신 내가 고른 옷을 입고,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