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도 설레었던 동네 한 바퀴|남은결 24

마음이 생기고 나니 집으로 가는 길도 달라졌습니다. 남은결 23에서 처음 설렘을 알게 된 뒤부터, 나는 가장 빠른 길보다 그 사람이 지나갈지도 모르는 길을 자꾸 바라보았습니다.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쩌다 한 번 마주칠 수 있다는 생각에 천천히 걷고 한 골목을 더 돌아가곤 했습니다.

멀리 돌아가는 길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슬쩍 발걸음을 늦췄습니다. 그 사람이 다니던 길과 가까워질수록 괜히 주변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하나가 평범한 하굣길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만나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다음 골목에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기대가 남았습니다. 기다린 것은 어쩌면 그 사람보다 설렘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길까지 기억하게 했습니다

전에는 스쳐 지나던 골목과 버스정류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마음과 달리 이런 순간만큼은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했습니다.

친구들은 금세 눈치를 챘습니다. “오늘도 그쪽으로 갈 거야?” 한마디만 들어도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같은 길을 택했습니다.

그 무렵에는 좋아하는 마음과 함께 성에 대한 궁금증도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다를 수 있고 서로의 경계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함께 배워야 했습니다.

첫 설렘이 시작되는 사춘기, 함께 알아둘 성(性) 이야기
변화와 고민 알아둘 점
누군가에게 끌림 사춘기에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호감과 관심이 커질 수 있습니다.
성에 대한 궁금증 몸의 변화와 함께 성과 친밀한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과 경계 호감이 있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까지 같은 것은 아닙니다. 서로의 경계를 존중해야 합니다.
신체적 접촉과 동의 어떤 접촉이든 상대방의 분명한 동의가 중요하며 싫다는 의사는 언제든 존중되어야 합니다.
혼자 고민하지 않기 성이나 관계 때문에 불안하거나 곤란한 일이 생겼다면 믿을 만한 어른이나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만나지 못해도 좋았습니다

집에 늦지 않게 들어가야 해 오래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몇 분 서성이다 돌아서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날의 하굣길은 허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 길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열다섯의 나는 아직 그곳을 천천히 걷는 것 같습니다. 만나지 못해도 다음을 기다릴 수 있었던 마음이 참 맑았습니다.

늘 같은 가게와 담장이었지만 그날그날 달라 보였습니다. 친구와 이야기하면서도 길 건너편을 자꾸 살폈습니다.

못 본 날에도 다음 날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기대만으로 평범한 오후가 특별해졌습니다. 이제는 골목 이름보다 그때의 마음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버스가 와도 바로 타지 않았습니다. 혹시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 사람이 나타날 것 같아서, 버스 한 대를 그냥 보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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