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아버지는 나보다 젊었습니다|남은결 14
오래된 장롱을 정리하다 흑백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자전거 옆에서 환하게 웃는 청년은 낯선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아버지였습니다.
낯선 청년이 아버지였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 댁에서 장롱 아래 칸을 정리했습니다. 낡은 서류봉투를 꺼내는 순간 작은 사진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사진 뒤에는 아버지 이름과 ‘1968년 봄’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말수가 적었습니다. 일하고 돌아오면 굽은 어깨부터 눈에 들어왔고, 젊은 날 이야기를 먼저 꺼낸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속 청년은 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웃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아버지였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사진 한 장이 열어준 이야기
사진을 어머니께 보여드리며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도 타셨어요?” 어머니는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웃었습니다. “첫 월급을 모아서 산 거야. 저 자전거 타고 바다에 가자고 얼마나 큰소리쳤는지 몰라.”
그날 처음 들은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밤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했고, 먼 도시에서 기술을 배우는 꿈도 꾸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자전거는 출퇴근 수단이 되었고, 펼치려던 책은 서랍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래된 사진이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움직인 모습은 사십 년 만에 같은 책상에 앉은 두 친구의 이야기와 닮아 있었습니다. 사진 속 얼굴 하나가 잊고 있던 이름과 말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부모에게도 처음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가족을 책임진 사람으로만 기억했습니다.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포기했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사람이라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가까워서 오히려 지나친 시간이 많았습니다.
사진을 찍은 날짜와 장소, 함께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두면 훗날 한 장의 사진이 가족의 이야기를 다시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사진은 다시 봉투에 넣지 않았습니다. 작은 액자에 담아 잘 보이는 곳에 두었습니다. 이제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무뚝뚝한 아버지보다 자전거를 타고 바다에 가고 싶어 했던 청년을 먼저 떠올립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제야 아버지의 한 사람 몫 인생을 바라보았습니다.
옷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까지 이어 붙인 재봉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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