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고도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무게|남은결 12
커피숍에서 일하면 별별 사람을 만났습니다. 우리 가게에서 삼십 미터쯤 가면 장례식장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상조회사 명찰을 단 사람이 들어와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몇 마디를 나누다가 그분이 장례지도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커피 한 잔 앞에서 나온 이야기
저는 어떤 순간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장례를 치르는 사흘보다 모든 절차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갈 가족들이 더 마음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고인을 모시는 절차는 정해져 있었지만 가족의 마음에는 순서가 없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 일도 없는 듯 멍하게 앉아 있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발인을 준비할 무렵 갑자기 주저앉는 가족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에는 정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멀리서 들렸습니다. 내가 왜 그곳에 앉아 있는지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이틀쯤 지나서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콧물까지 한꺼번에 흘렀습니다.
어머니 발인 날 터진 울음
발인을 준비할 때 장례지도사가 했던 말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했습니다. 고인의 가시는 걸음걸음이 어둡지 않도록, 상주들과 절을 올리며 함께 곡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냥 울었습니다. 관이 움직이자 이제 정말 어머니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으로 내려왔습니다. 무릎에 힘이 풀렸고, 계속 “엄마”만 불렀습니다.
화장터에 도착해서는 몸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다시는 “엄마”라고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제야 온몸으로 밀려왔습니다. “엄마, 가시는 길이 어두우면 제 울음소리만 따라가세요.” 마음속으로 그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다시 커피를 내렸습니다
장례지도사와의 대화가 끝난 뒤 저는 잔을 씻고 다시 커피를 내렸습니다. 가게 문이 열리면 평소처럼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했습니다. 웃는 손님에게는 웃었고, 말이 없는 손님 앞에는 조용히 따뜻한 잔을 놓았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울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멀쩡한 얼굴로 커피를 주문하고 한참 뒤에야 길게 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문받은 커피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습니다.
커피 한 잔이 슬픔을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잠시 말없이 앉아 있을 자리는 내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시간이 장소에 남는 이야기는 옛날 극장에는 사람들의 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에도 담았습니다.
어머니를 잊어서 다시 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기억한 채 가게 문을 여는 것이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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